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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

천년의 사무라이 역사를 10분안에 니 머리속에 쳐박아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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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일본은 너무나 뻔하다.
AV, 야동, 노모. 이 3가지 밖에 없겠지. 그래서 당신에게 오늘 요즘애들이 따라하는 야쿠자의 '구미(組)' 의 기원이되는 이야기를 해주고자한다.
그러자니 사무라이를 끌고 나올수밖에 없고, 일본에의해 미화되기는 했지만 그 기개만큼은 한겨울 똘똘이 만큼 쪼그러든 당신이 배웠으면 한다.

살색으로 가득찬 당신의 뇌에는 사무라이하면 이것밖에 안떠오르지? 사무라이AV 레이블에서 데뷔한 아사쿠라유?!

이야기를 하자면 천년전 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천황
 서기 300년경 쌀 재배에 성공한 일부 일본인은 야마토 평야에 정착촌을 이루었다. 정착촌은 곧 쌀로 내는 세금에 의해 운영되는 국가로 발전했지만 야마토 평야의 지배권을 놓고 씨족들 간에 다툼이 생겼고, 급기야 군대가 만들어져 전쟁이 일어났다. 이 전쟁에서 야마토가문이 승리를 거두었고, 그들은 가문의 상속자를 "천황"이라 칭한뒤 교토에 정부를 세우고 여러 귀족들과 살았다.

거함거포시대의 마지막 전함인 야마토의 이름은 그것에서 따온것이다. 일본인들이 '혼'이란 개념으로 말하기도 한다

황실은 귀족의 수입을 보장해주기위해 토지를 나눠주었다. 농민은 토지를 경작했고, 귀족에게 경작료를 냈다. 대신 귀족은 토지와 농민을 보호해야 했다.

사무라이
 귀족은 사병 조직을 두었다. 또, 쿄토의 귀족 인구가 늘어나면서 변방을 개척해 스스로 토지를 확보하려던 새귀족들이 신체를 단련하여 쿄토 귀족의 사병으로 들어가는 일도 많아졌다.
이때부터 '섬기는자(侍)' 라는 뜻의 사무라이가 생겨났다. 이들은 복종의 대가로 귀족이 가진 토지의 일부를 할당받았다. 힘센사무라이일수록 더 넓은 땅을 받았다. 1-세기에 이르자 사무라이 가문 가운데 많은 토지와 세력을 가진 군벌이 나타났다. 서로 싸우는 경우도 잦았는데, 이때 이미 몇몇 군벌 세력은 맘만 먹으면 교토 황실을 전복 하고도 남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군벌중 가장 큰 가문은 미나모토였으며, 그들은 이미 수세기 동안 절대적인 충성심으로 황실을 지켜왔다.

미나모토 요시츠네

쇼군
 미나모토 가문은 반란 세력의 진압을 도맡으며 황실의 신뢰를 얻었다. 천황이 미나모토 가문의 수장에게 '쇼군(정이대장군)'이라는 명칭을 내린뒤부터 쇼군이 정치와 군사의 실세가 되었다. 쇼군은 천황을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영향력을 줄일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교토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실질적인 정부를 세우고 이를 '막부'라고 하였다.
당신들이 아무 생각없이 게임이나 만화에서 보는 가마쿠라막부, 에도막부할때 막부가 이런거라고. 레이블 이름 보다 쉽자나? 좀 대가리에 쳐 박아봐.
1274년 몽골이 쳐들어 오려할때 1:1 전투에 익숙하던 일본은 몽골의 기마병을 막을 수없었다. 그런데 그때 불어온 카미가제 (神風)가 몽골군을 수장시켰고 그때 부터 자신들은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착각속에 빠져살게 되었다.
후일의 이야기지만 전국시대 최강의 기병대를 가진 신겐의 기병대도 이동할때만 말을타고 전투때는 말에서 내려서 돌격하는 방법이 최고 라고 했다.

이쇼군이 아니다


전국시대
 원래 사무라이는 대가를 받고 싸움에 임했으며, 고용주가 경제력을 상실하면 미련없이 떠났다. 하지만 일본내 귀족 간의 싸움에서는 노획한 토지나 인력을 얻을 수 있었지만 몽골과 싸운 뒤에는 대가가 없었다. 전리품이 없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동원된 사무라이는 분개했다. 그들은 이제 쿄토의 정부보다 지방영주에게 충성하기 시작했고, 힘이 커진 지방영주는 소교뮤 정부를 만들어 다른 자치정부를 공격했다. 강력한 지방영주, 그들이 바로 '다이묘'이다. 
이들 아는 다케다, 우에스기, 모리 등등의 시대이다. 그중 오와리 지방의 오다 노부나가는 뛰어난 지략과 행동력을 동원해 일본을 통일하겠다는 꿈을 품었지만. 1/3을 통일하고는 혼노지에서 타죽고 만다. (그러한 이유로 마왕으로 많이 각색되곤 한다. 그에게 신발을 신기던 몸종 출신 장수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노부나가의 모든것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1590년 그는 다이묘를 규합하고 대내신에 자리에 오른다.

가케무샤, 최강의기병대, 카이의호랑이 등등으로 유명한 다케다.

에도막부
 히데요시가 죽은후 그이 동맹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권력을 가로채려했다. 히데요시의 아들을 섬기는 사무라이들은 항전했지만 이길 수가 없었고, 이에야스는 에도(도쿄언저리)에 막부를 설치하고 다이묘간의 동맹과 유대를 강화하기위해 서로 친척을 교환해 살게했다.

신선조
 에도 막부는 쇄국정책을 고수했지만, 젊고 급진적인 사무라이는 아시아 약소국들이 식민지로 전락하고 있는 국제정세를 감지하고 막부의 시대가 끝났다고 보았다.
사무라이는 막부파와 도막파(막부를 무너뜨리자는 진영)로 나뉘어 칼부림을 했다. 막부파 최강의 집단이 바로 신선조다.(잘 아는 바람의 검심에서의 사이토등)
하지만 최후의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젊은 천황 메이지에게 스스로 통치권을 내주었고, 이것이 메이지 유신이다. 메이지 정부는 지방 영주와 사무라이의 권력을 빼았아 중앙에 집중시켜버렸고, 끝내 칼 휴대 금지법 까지 시행했다. 결국 사무라이는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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