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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

변명하자면 애정결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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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자신은 알지도 못하는 여자와 자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아는 여자랑 자는건 아직 상상도 못해볼 일이지만. 무튼 성욕을 처리하는 방법으로선 마음이 편했고, 여자와 서로 껴안거나 서로 몸을 접촉하는 것 자체는 즐거웠다.

 

 내가 싫은건 다음날 아침 헤어질 무렵이다. 눈을 뜨면 옆에 알지 못하는 여자가 쿨쿨 자고 있고, 온 방 안에 술 냄새가 풍기고, 침대고 조명이고 커튼이고 무엇이든 간에 모두 모텔 특유의 요란한 색채투성이고, 내 머릿속은 숙취로 흐리멍덩해 있다.

 얼마 후 여자가 눈을 뜨고, 주섬주섬 속옷을 찾아 다닌다. 그리고 스타킹을 신는다. 혼자 주절주절 떠들거나, 나에 대해 모든걸 알고 싶어하는지 꼬치꼬치 깨묻기도 한다. 그러곤 거울을 향해 골치가 아프다. 화장이 잘 안받는다 하고 투덜대면서, 루즈를 바르고 속눈썹을 붙이곤 한다.

 

 나는 그런 것이 싫었다. 지고 싶지 않아서 나는 두번인가 세번, 그런 식으로 여자와 자고 난 후에 이런짓을 셀수없이도 계속하고도 허무해지지 않더냐고 선배에게 물어봤다.

 

 "네가 이런 걸 허무하다고 느낀다면, 그건 네가 정상적인 인간이라는 증거고 아주 바람직한 일이야. 알지도 못하는 여자와 자고 다녀 봤자 얻는 건 아무것도 없지. 피곤하고, 자신이 싫어질 뿐이야. 그건 나도 마찬가지라고."

 그런데 왜 계속하냐니깐

 

 "그걸 설명하기란 어려워, 왜 도스토예프스키가 도박에 관해서 쓴 것있지? 그것과 마찬가지야. 즉 그건 말이지, 가능성이 주위에 충만해 있을 때, 그것을 두고 지나간다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 그걸 알겠어?" 

나는 우물 거릴수 밖에.

 

 "날이 저문다, 여자가 거리에 나와 주변을 어정거리면서 술을 홀짝거리고 있다. 그녀들은 무엇인가 찾고 있는데, 나는 그 무엇인가를 그녀들에게 줄 수 있는거야. 그건 참으로 간단한 일이지. 수도 꼭지를 비틀어 물을 마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간단한 일이야. 그런 상대는 눈 깜짝할 사이에 함락 시킬 수 있고, 상대방도 그걸 기다리고 있는 거지. 그것이 가능성이라는 거야. 그런 가능성이 눈앞에 굴러다니고 있는데, 그저 보고만 지나칠 셈인가? 자신에게 능력이 있고, 그 능력을 발휘할 장소가 있는데, 넌 잠자코 지나치겠단 말야?"

 

 혼자가 되자 '아 난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 넌더리가 났다. 이런 짓을 하고 있을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 몸은 굶주리고 메말라 있어서.

 

변명하자면. 애 정 결 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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