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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

저기 가고 있네 병신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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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심심풀이로 타로점을 봤는데 '6, 7, 8월'이 좋을 거라고 했다. 그 유월이 언제나 오나 싶었는데 벌써 이틀이나 지났다. 시간 참 빠르다. 


올해 초 남들 다 그러하듯 체중 감량, 외국어 습득 등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가시적으로 거둔 성과는 없다. 그나마 꾸준히 하고 있다는 것에,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자위를 할 뿐. 하지만, 유월이 되자 조바심이 생긴다. 


영화 '아델라인'에 이러한 대사가 있다. "나이, 연인, 마신 와인의 잔 수는 세는 게 아니다" 늙지 않는 여자 주인공에게 한 남자가 뻔뻔하고 느끼하게 저런 작업멘트를 던지며 저돌적으로 구애한다. 사실 속뜻은 이것저것 재지 말고 '이 순간을 즐기자'라는 다분히 음흉한 멘트다. 웃긴 점이 있다면 철저하게 시계와 달력의 숫자 속에 살아가는 남자가 이를 벗어난 여자에게 시간을 언급하고 있는 거다. 


이 말을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우리 모두 시간과 숫자에 쫓기지 말고 현재를 즐기자'라는 말이다. 하지만 어디 현실이 쉬운가. 시간에 쫓기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여 주인공처럼 늙지 않는 존재라면 모를까 시간 흐름 자체가 사람에게 불안과 스트레스를 준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경계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처럼 1년의 절반을 넘어가는 시점에 생각이 더 많아진다. 아델라인은 이럴 때 무슨 생각을 할까. 


2016년 5월 31일의 내가 2016년 6월 1일이 됐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지적능력과 유머 감각이 갑자기 대단하게 생겨 여자들이 선릉역부터 시청역까지 4열 종대로 늘어서서 밤새도록 번호 붙이며 나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지 않는다. 똑같은 인간이 그저 하루를 더 잤을 뿐이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업계에 들어와서 내가 만난 사람들에 대해 정리해 기록하는 것을 관뒀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이상한 사람 등이 있지만, 언제나 가장 중요한 건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 하루하루도 마찬가지인듯하다. 


성과 없던 지난 반년을 패색 짙은 축구 경기라고 보지 않는다. FC 서울과 우라와의 경기처럼 언제든지 상황은 변하기 마련이다. 더구나 의미 없는, 성과 없는 시간은 단연코 없다. 시간이 쌓이면 경험이 되고 경험이 쌓이면 레벨업하는 게임처럼 말이다. 


너무나도 뻔한 이야기지만, 나도 그렇고 이글을 보는 당신도 그렇고 앞으로 좀 더 치열하게 산 하루가 쌓이면 남은 2016년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모른다. 자, 반쯤 걸어간 병신년. 이년이 어떤 년이 될지는 나한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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